근간에 들어 도심 선교에 대한 관심이 많아 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전부터 도심선교 하면 (물론 지금도 그렇게 많이 인식되고 있지만) 도심에 사는 빈민들에 대한 선교를 강조함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뉴욕의 도심 선교는 뉴욕에 있는 빈민 즉 할렘이나 스패니쉬들이 사는 열악한 지역을 대상으로 한 선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학교들의 도심선교 프로그램들도 이렇게 많이 구성되어 있음을 듣게 됩니다.
만약 서울에서 도심 선교를 한다면 어떤 것이 떠오르나요? 저는 먼저 청량리에서 밥퍼 사역을 하시는 다일공동체의 최일도 목사님이 떠오릅니다. 또 사역의 범주로는 소년 소녀 가장들과 독거 노인을 돌보는 일들이 필요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사역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며 소자에게 물 한 그릇 주는 우리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귀한 사역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범위로만 국한된 도심선교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볼 때 갖게 되는 한계성이 분명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세계 인구의 80% 이상은 이미 도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은 도심으로 몰려들고 있고 기근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제 3세계 국가들에서 이러한 현상은 더 심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농촌에 젊은이들을 찾아 볼 수 없는 현상은 이미 오래되었으며 일본과 중국도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심 선교는 더 이상 도심의 빈민만을 대상으로 한 협의의 선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명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것은 이 마지막 세대에 주님께서 주시는 도심에서 우리가 해야 할 필수불가결한 지상과제의 한 연장선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세계가 더 이상 머물러 있는 시대에서 움직이는 시대로 변화되고 있으며 땅끝은 지엽적인 땅끝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복음이 들어가기 힘든 현장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상명령의 본질은 이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시작된 도심선교는 온 유다라는 국가로 확산되고 사마리아라는 마음속에 품지 못하는 민족과 나라들 가운데 심어졌으며 그리고 땅끝이라는 온 열방과 족속들 가운데 퍼지도록 명하셨습니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선교는 도심으로 시작해서 땅끝으로 종결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 땅끝은 분명 미전도 종족을 포함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때문에 미전도 종족들에게 복음이 들어갈 수 있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선교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동시에 기억해야 할 것은 도심은 영적인 땅끝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도심으로 시작해서 다시 도심으로 돌아오는 땅끝 선교의 새로운 영적 패러다임을 보여주고 계심을 믿습니다.
도심선교를 도심의 빈민을 대상으로 한 선교에 머물도록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선교의 패러다임을 하나님 나라의 왜곡으로 몰고 가는 사단의 전략일지도 모릅니다. 도심에 몰려드는 수많은 것들을 보십시요.
뉴욕은 어떻습니까? 뉴욕은 세계의 중심이고 도심의 상징입니다. 문화의 중심이고 예술의 상징이고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맘몬의 상징이고 또 수많은 인종들이 있는 그런 곳입니다.
길거리를 가다 보면 사람들이 무엇을 구경하고 있는데 가보면 삭발을 하고 장삼을 두는 승려들의 기도를 보고 신기해 하는 그리고 그들의 팜플렛을 유심히 들여다 보는 백인, 흑인들을 보게 됩니다. 몇 블럭 지나지 않아서 기공을 수련하는 자들이 모여 있고 이를 구경하는 구경꾼들을 흔하게 보게 됩니다
조금 더 가면 공원 한 구석에서 머리에 무지개 색 염색을 하고 있는 곳은 다 피어싱을 하고 온갖 몸에는 문신을 한 연주자들이 강한 헤비 메탈로 목을 긁어대며 노래하는 것을 흥겨운 몸동작으로 쳐다 보다는 인파의 눈들이 있습니다
도심 곳곳에는 수많은 퍼레이드가 있는데 성 패트릭 데이의 퍼레이드와 같이 백호주의를 자랑하고 우월감을 드러내며 폭력을 일삼는 모습이 있는 가 하면 동성연애자 들끼리 옷을 벗고 낮뜨거운 모습으로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Union square 와 같은 곳에서는 지하에 사탄 숭배교가 공공연하게 있기도 합니다. 이미 유럽처럼 교회를 술집과 나이트 클럽으로 팔아 넘어간 곳도 있습니다. 할렘에만 400개의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교회들 중에는 유니테리안 Church 와 같이 다신론 범신론적 사상을 가진 이름만 교회인 것들이 수두룩 합니다. 모슬렘, 힌두이즘, 정령주의자 와 같은 악한 영의 세력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마음껏 활개를 치는데 참 교회의 모습들은 참 찾아 보기 힘이 듭니다.
이런 도심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바라 보아야 할 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전에 도심 속에서의 중보기도 사역의 중요성에 대해서 함께 나누는 시간에 어떤 지체가 그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상징적 의미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믿는 다는 말에 저도 공감을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 사건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을까요? 그리고 그토록 처절하게 매달렸던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도 수많은 도심은 소돔과 고모라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패역의 산당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도심속에서 의인 10명만 있다면 하나님의 그 도심을 떠나지 않으시고 그 가운데에 주의 때에 주의 기름을 부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전혀 들어갈 것 같지 않던 철옹성 같던 도심의 모슬렘 사람들에게 힌두인들에게 복음이 심기워 지는 기적의 현장을 우리는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술집이 문을 닫고 청년들이 마약과 음란과 패역의 모습에서 회복되고 줄을 지어 교회로 향하는 그 마지막 때의 긴박한 상황을 그리게 됩니다.
그래서 도심에서 주의 날을 기대하며 목숨을 건 기도를 하고 복음을 전하고 또 빵과 사랑을 나눠주는 사역도 함께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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